사진) 단속사지 동서3층석탑 : 통일신라 이래 천년고찰로 고승이 속출하여 법통을 이어왔지만, 1568년 유생들의 파괴와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후 재건되었으나 현재는 폐사지로 남아있다. (출처 : 산청군 문화관광과)
『삼국유사』기록에 효성왕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을 때에 한번은 신충(信忠)이라는 어진 선비를 데리고 바둑을 두면서 말하기를“이 다음에도 그대를 잊지 않을 것임을 저 잣나무를 두고 맹세를 하겠다”하자 신충이 일어나 감사한 마음에 절을 하였다. 몇 달 뒤에 왕이 즉위하여 공로 있는 신하들을 표창하면서 신충을 잊어버리고 차례에 넣지 않았다.
신충이 원망스러워서 노래를 지어 그 잣나무에 붙였더니 나무가 갑자기 누렇게 시들어 버렸다. 왕이 괴상스럽게 여겨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고는 깜짝 놀라 말하기를“정사에 바쁘다 보니 가깝게 지냈던 사람을 잊어버릴뻔 하였구나!”라며 곧 그를 불러 벼슬을 주니 잣나무가 그대로 살아났다. 이로부터 그는 두 왕대에 걸쳐 왕의 총애로 높은 벼슬을 하였다.
경덕왕(효성왕의 아우) 22년(763)에 신충이 두 친구와 약속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남악(南岳)으로 들어가서 왕이 다시 불렀으나 되돌아가지 않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는 왕을 위하여 단속사(斷俗寺)를 세우고 그곳에 살면서 종신토록 속세를 떠나 왕의 복을 빌겠다고 청하니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공명은 끝이 없고
귀밑머리 먼저 희어지니
임금 은총 많다 해도 백년이 잠깐 일세
언덕 저편의 푸른 산[절] 꿈결에 자주보이니
그곳으로 나는 가서 향화 피워 우리임금 복 빌리라
(『삼국유사』권5,「신충괘관」)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윗사람과 충심을 다하고도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고 물러나 자신을 알아주었던 윗사람을 위해 절개를 지켰던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부러움과 교훈을 함께 받고 있다. 언젠가부터 지키지도 않을 말을 내뱉고 말뿐인 약속을 하는‘말의 잔치’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왕이 잣나무를 걸고 신충에게 맹세했듯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도 각기 수없이 많이 맹세한 것이 있었을 것이며 사소한 맹세라도 지키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쓰면서 ‘물방울 다이아’, ‘명품 핸드백’도 다 싸줄 것처럼, 말 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못해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가득하다. 마음만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라며,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면 ‘어느 세월에’ 라는 답변이 돌아오겠지만, 한국의 모든 남편들은 신충이 왕을 위하였던 마음처럼 아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