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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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문화재연구원장 김호상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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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사 터를 찾아가 본적이 있나요?
 | 문화유산편지
최종 수정일 : 2016/12/02

여행지역 : South Korea
 | 조회수 : 1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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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석장사 터(경주시 석장동산 81-2)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4월과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5월이 오면, 내게는 늘 아카시아 향기와 같은 아련한 향수와 더불어 신라시대의 폐사지인 석장사터[錫杖寺址]가 떠오른다. 석장사는 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많은 신라시대 사찰 가운데에서도 유서 깊은 사찰로, 오래전부터 역사학계와 미술사학계, 그리고 국문학계에서 비상한 관심과 연구의 대상으로 주목 받아온 곳이다.


석장사라는 절 이름은『삼국유사』기록에 “양지스님이 지팡이 머리에 포대기를 달아 놓으면 지팡이가 저절로 시주하는 집으로 날아가, 지팡이를 흔들어 소리가 나면 그 집에서 이것을 알고 재 올릴 비용을 집어넣어주고. 자루가 다 차면 날아서 되돌아왔기 때문에 그가 사는 절 이름을 석장사(지팡이 절)라 하였다.” 한다.


한편, 이 절의 주지로 있던 양지스님에 대해서는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석장사에 머물면서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삼천불전을 조성하여 절 가운데에 안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묘사의 장육상과 사천왕사의 탑 조각상 등 불멸의 예술품을 제작하였다. 그때 만든 작품은 1300년이 훨씬 더 지난 오늘날 까지 전해져오고 있어 우리를 감탄케 하고 있다.


석장사는 조선후기 어느 시점에서 허물어진 후 도굴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비바람에 의해 지형의 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 1986년 봄과 1992년 가을에 걸쳐 2回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던 곳이다. 1986년의 1차 발굴조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 2년생 이였던 내게 처음 접하는 발굴조사였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책임연구원으로 발굴조사를 마무리하였던 내게는 인연이 깊은 유적이다. 어쩌면 석장사와의 인연으로 역사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아직까지 박물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석장사는 늘 내가 걸어온 학문의 길 입구에 사천왕처럼 버티고 서있다.


발굴조사결과 석장사는 아담한 산능선으로 둘러쌓인 자그마한 암자 규모의 산지가람임이 밝혀졌고, 출토유물로는 백자 바닥면에 묵서(墨書)로 “錫杖”이라는 명문이 있는 자기, 금동불과 흙으로 빚은 신장상 . 기와 등이 다수 수습되었다. 특히 다양한 탑과 불상이 새겨진 전(塼: 흙으로 만들어 불에 구운 벽돌), 연기법송탑상문전(緣起法頌銘塔像紋塼)은 그 유례가 드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예술품이다.


발굴조사 후 무서울 만큼 끈질긴 생명력으로 유적을 점령해가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5~6년에 한번씩 잡목을 제거해오고 있어 이제 아카시아 나무는 없지만 해마다 칡넝쿨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절터의 모습을 삼켜버린 채 늘 변함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발굴조사 후 대부분의 유물들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석재유물만이 남겨져 있는 석장사 터를 볼 때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노쇠하게 밀려나 있는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석장사는 천년을 훨씬 넘긴 세월을 견디어온 유적의 연륜 때문일까? 석장사를 다녀올 때면, 힘들고 지칠 때 고향을 다녀온 듯 힘이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원문링크 http://www.kimhosang.com/html/sub2-2.html?page=11&...



김호상, 문화유산, 신라, 경주, 석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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