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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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문화재연구원장 김호상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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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한송이 꽃을 어디에 둘까?
 | 문화유산편지
최종 수정일 : 2018/01/22

여행지역 : South Korea
 | 조회수 : 1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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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ePix S5Pro | f/6.3 | iso 200 | 2013:10:26 13:19:40 | Flash did not fire, compulsory flash mode | 70mm


사진) 해국(신라문화진흥원 백태순촬영)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성덕왕(聖德王)때의 순정공(純貞公)은 강릉(江陵) 태수로 부임해가는 도중에 한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그 옆에는 돌로 된 산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서 있는데, 그 높이가 매우 높고 그 꼭대기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이것을 보고 측근들에게 말하기를, ‘누가 저 꽃을 꺾어다줄 사람이 없을까?’ 하였다. 수행하는 무리들이 대답하기를, ‘사람이 발붙여 올라갈 데가 못 됩니다.’ 하면서 모두들 못하겠다고 회피하였는데, 곁에 웬 늙은 노인이 새끼 밴 암소를 몰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바치고서는 노래까지 지어 바쳤다. 그 늙은이가 누구였는지 기록되어 있지는 없었지만, 그가 꽃과 함께 지어 바친 헌화가(獻花歌)는 다음과 같다.


붉은 바위 가에서

손에 잡은 어미소 놓으시고

나를 부끄러워 아니하시면

꽃을 꺾어 드리오리다.

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다시 이틀 길을 가다가 또 한 바닷가에 정자가 있었다. 거기서 점심을 먹던 중에 바다의 용이 돌연히 부인을 채어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순정공은 엎어졌다 자빠졌다 발을 굴렀으나, 아무런 계책이 없었다. 또다시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입이 떠들면 쇠라도 녹여낸다고 하였는데, 지금 그까짓 바다 속에 있는 미물이 어찌 여러 입을 겁내지 않을 것입니까? 이 경내의 백성들을 시켜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순정공이 그의 말대로 하였더니 용이 부인을 모시고 바다에서 나와 그에게 보내주었다. 여러 사람들이 부른 바다 노래가사는 다음과 같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 내 놓아라.

남의 아내 훔쳐간 그 죄 얼마나 크랴!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너를 잡아 구워 먹겠다.


젊음은 참 아름답다. 그리고 세상에 겁날 것 없이 피 끓는 청춘으로 부딪혀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영원할 것 같은 젊음은 언젠가는 또 늙게 마련이다. 늙음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지만 그 세월 속에는 오랜 세월을 이겨낸 경험과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우리는 모든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용기와 교훈은 어른들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벼랑 끝 한 송이 꽃을 꺾어 바치는 용기와 열정, 바다 속의 용을 굴복시키는 그 지혜를 나이 드신 분들로부터 배운다면 인생은 참 풍요로워 질 것이다.


다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은 노래 가시 중 ‘너는 늙어 봤느냐?, 난 젊어 봤다.’ 라는 구절이 세대별 구분이 심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겨운 멜로디임에도 조금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는 수레의 양쪽 바퀴처럼 젊음과 늙음,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함께하는 균형 잡힌 사회로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금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 더 크고 시급한 시대적 사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호상, 문화유산편지, 문화,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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