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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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문화재연구원장 김호상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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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과 고도꾸천왕의 검소함
 | 문화유산편지
Last Modified : 2016/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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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능지탑 : 문무왕의 시신 화장터로 추정. 원형을 알 수 없어 2단만 쌓고 일부 원형과 나머지 석재들은 옆에 모아 두었다.


누구나 죽게 되면 나라와 시대, 그리고 신분에 따라 다양한 무덤들이 만들어진다. 중국의 진시황(BC.259~210)은 자기가 묻힐 곳을 70만 명의 죄수를 동원하여 거대한 무덤을 조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덤의 동쪽에 대형의 지하 갱(坑)을 파고 실물에 가까운 무인과 마차 등 8,000여명의 병마도용을 만들어 생전과 같은 지하궁궐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 이보다 앞서 B.C 3,000년경 이집트의 기자 지방에 세워진 피라미드들은 장방형 장대석을 사각뿔 모양으로 쌓아 올렸는데, 기자 지방은 사막의 동쪽 끝에 위치하였으므로 이렇게 큰 석재는 주위에 없는데도 어디서 채석하여 운반하였는지, 그리고 기후관계로 1년 중 3개월간만 축조 작업이 가능하다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이에 비하여 신라 30대 문무왕(661~681)과 일본의 36대 고도꾸천황(孝德天皇, 645~654)은 자신의 무덤을 간략하게 하라는 유언과 조서(詔書)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문무왕의 유언 중 일부를 보면 “옛날 모든 일을 다스리고 살폈던 영주도 마침내 한 봉우리의 무덤을 이루고 만다. 시간이 지나면 풀 뜯는 아이들과 목동들은 그 무덤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는 그 무덤 옆을 뚫으니 무덤이라는 것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꾸지람과 비판만이 역사책에 기록될 뿐이며, 헛되이 인력만 낭비하고, 영혼을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상하고 아픔을 금치 못하겠으니 이러한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임종 후 10일에는 고문 밖에서 서국(西國: 인도식)식에 의하여 불로 태워 장사 지낼 것이며, 상례도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하였다.


고도꾸천황은 장례법에 대하여 조서를 내려 “시신을 넣는 관(棺)과 곽(槨)은 뼈를 썩히는데 족하고, 옷은 신체를 썩히는데 족하다. 나의 무덤은 농토로 사용하지 못하는 곳에 만들고 세대가 바뀌면 그곳을 모르게 하고자 한다. 금․은․동․철은 묻을 필요가 없다. 토기로 옛적의 수레 형체를 만들고 나를 모시었던 사람들을 무덤에 딸려 묻지 말고 풀을 묶어 그들의 인형을 만들면 된다. 관은 틈새를 3번 옷칠 하고, 죽은자의 입에 옥구슬을 물리지 말라. 또한 옥으로 장식한 옷이나 상자를 쓰지 말라. 그런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짓이다.


왕 이하 서민에 이르기 까지 빈소를 짓지 말며, 기내(畿內)에서 제국에 이르기 까지 한 곳을 정하여 묻게 하여 더럽게 각처에 흩어 묻어서는 안 된다. 무릇 사람이 죽을 때 스스로 목을 매어 따라죽거나 강제로 망인의 말(馬)을 순사시키거나 혹은 미망인을 위하여 보물을 무덤에 묻거나 망인을 위하여 머리털을 자르고 허벅지를 찌르고 만장을 읊거나 하는 옛 풍습은 모두 다 그만두어라. 만일 지시한 일을 위반하여 범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일족을 벌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무왕과 고도꾸천황은 고대사회에서 절대적인 군주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선각자임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나 고대사회에서나 장례는 여전히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이기 때문에 최상의 격에 맞추어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들은 스스로 검소한 장례를 요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을 초연히 맞이하였고, 도리어 남은 이들을 배려한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들에게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원문링크 http://www.kimhosang.com/html/sub2-2.html?page=11&...


김호상, 문화유산, 신라, 경주, 문무왕, 고도꾸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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