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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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문화재연구원장 김호상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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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최고의 청제저수지를 둘러보며...
 | 문화유산편지
Last Modified : 201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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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청제저수지(경상북도 영천시 구암리 437-1외)

설명) 이 저수지는 신라 법흥왕 23년(536) 이전에 축조된 현존하는 최고의 신라제방이다. 현재 제방의 길이는 243.5m이며 높이는 12.5m로 흙으로 쌓은 저수지이다. 저수면적은 11㎡이고 저수량은 약 59만 톤이다. 현재도 이 지역 일대의 주요한 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농업사연구에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사진의 왼쪽 상단 청제비각에는 1개의 청제비와 1개의 청제중립비가 있다.


경북 영천 도남동 청제저수지 가장자리에는 보물 제157호인 청제비(菁堤碑)와 조선시대에 청제저수지를 수리하면서 세운 청제중립비(菁堤重立碑)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청제비는 높이 130cm정도의 작은 규모로 적갈색의 화강암을 가공하여 만들었으나 비면은 고르지 못하다. 비의 앞면과 뒷면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각각의 시기는 전혀 다르다. 원래 앞면 병진년(536)에 새긴 비가 먼저 세워졌고, 이후 정원 14년(798) 뒷면을 이용하여 다시 비문을 새겨 양면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강희 27년(1688)에 세워진 청제중립비가 서 있는데 조선시대에 세운 중수 비다.


청제비의 비문에는 신라시대에 농사를 짓기 위하여 제방을 쌓았다는 내용과 함께 당시 제방축조에 참석한 관리, 기술자, 동원된 인원을 비롯하여 제방의 길이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농사를 지었던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으며, 청동기시대에 이르러서는 곡물을 수확하였던 반달돌칼 등의 석제 농경구들이 흔하게 확인되고 있다. 선사시대는 오늘날처럼 인구가 많지도, 농경에 목숨을 걸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철 생산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져 철제 무기류와 함께 철제 농경기구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 농경은 우리민족의 근본이 되었다.


우리 민족은 농작물 재배로부터 시작된 농경을 기반으로 약 3,000년이라는 길고 긴 농경문화 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농촌은 도시의 번영 속에 가리워지고 다만 마음속 정서의 고향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지금은 3,000년을 이어온 농경민족의 뿌리도 끝없이 흔들리고 있어 우리들의 후손들은 가파른 언덕의 다랭이 논밭이나 화전민들의 모습들을 박물관이나 역사 속의 기록으로만 접하여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때가 되면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 우리의 선택이 세계적 변화에 현명하게 잘 적응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우리의 문화는 한반도에 뿌리를 내려 땅을 갈며 농사를 지어 일구어 온 농경문화가 근본문화이다. 그 옛날 우리들 조상의 조상들이 말을 타고 대륙을 횡단했던 유목민이었다고도 하지만 농경을 버리고 반도체산업 자동차산업 등으로 먹고 살고,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자동차민족의 길을 택한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라의 힘과 국민의 자존심은 영토와 인구, 경제력과 국방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문화의 올바른 전통계승에서 표출된다. 우리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에서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들의 애환을 보고 있다. 더불어 외세의 억압에 눌려있지만 자국의 역사와 문화의 자존심으로 나라의 독립을 구하고자 하는 불굴의 국가와 민족들도 우리는 알고 있다.


기업주도의 산업에 의지해 먹고사는 이 시대에 농경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아무리 주장해도 경제논리에 막히는 현실이다. 농촌의 문화가 도시의 문화로, 농업이 천덕꾸러기 산업으로 변화해가는 오늘을 보면서 농촌과 지방문화를 보호하지 못하였을 때 우리민족의 문화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우리민족의 문화가 농경문화이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청제저수지를 둘러보며 청제비각에 농경부흥비(農耕復興碑)를 하나 더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원본글 http://www.kimhosang.com/html/sub2-2.html?page=10&...


김호상, 문화유산,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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