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on DIGITAL IXUS 50 | f/5.6 | 2012:09:12 18:04:08 | Flash fired, compulsory flash mode, red-eye reduction mode | 5.8mm | Manual WB
사진) 황룡사 금당지 장륙존상 받침돌
황룡사는 신라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사찰의 규모나 품격이 빼어 날 뿐만 아니라 고대사는 물론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신라의 사상과 문화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진흥왕 14년(553)에 공사를 시작하여 선덕여왕 12년(643) 백제의 장인 아비지와 김용춘이
신라장인 2백 명을 동원하여 9층탑을 완공하기까지, 93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 것만 보아도 황룡사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장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폐허화된 황룡사는 40년전 까지만 해도 민가가 들어서 있어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던 것이 1976년 1차년도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8년에 걸쳐 현장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이를 통해 동서담장의 길이 288m, 남북담장의 길이 281m인 대규모의 사찰임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 사역의 중심에서는 금당지 ․ 9층목탑지 ․ 강당지 등이 조사되어 당시 황룡사의 위상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금당지에는 장육존상의 받침돌 3개가 남아 있다.
받침돌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 윗면을 번거롭게 장식하지 않고 단순히 평평하게 고른 뒤 불상을 고정시키기 위해 촉이 들어가게 홈을 파서 고정시킨 것으로,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이 보이지 않는 받침돌에까지 스며있음을 알게 해준다.
금당의 벽면에는 신기의 화가 솔거(率居)의 노송도(老松圖)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솔거는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솔거는 선천적으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일찍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줄기는 비늘처럼 터져 주름지었고 가지와 잎이 얼기설기 서리어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들이 가끔 바라보고 날아들었다가 허둥거리다 떨어지곤 하였다고 전한다.
분황사의 관음보살과 단속사 유마상(維摩像)도 모두 솔거의 작품으로 전하며, 그의 그림은 세상에 전하여 신화(神畵)로 여겨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근거해 솔거가 단속사의 유마상을 그린 것이 맞다면, 경덕왕 때의 사람이 되므로 그가 그린 소나무에 새들이 날아들었다는 일화가 다만 허황한 전설이 아니라 실제의 사실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경주시는 황룡사복원관련 홍보관 건립을 진행하고 있으며, 오는 2035년까지 황룡사를 복원하는
대단위 국책 프로젝트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 복원이 도리어 문화재 파괴나 변형이 이루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와 더불어 복원반대 견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