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참소리축음기, 에디슨박물관(2014. 10. 31)
설명) 참소리축음기, 에디슨박물관은 한사람의 집념과 끈기가 이렇게 큰 결과물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감동을 주는 곳이다. 우현 고유섭선생은 제자들에게 ‘경주에 가거든 동해구의 문무왕릉을 찾아보라’ 했듯이, 필자는 강릉에 가시거든 참소리, 에디슨박물관을 찾아가 보시라 말하고 싶다. 그곳은 한사람이 평생에 걸쳐 이룬 꿈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출처) 참소리축음기, 에디슨과학박물관 홈페이지 및 전시관 소개의 글을 인용 편집한 글입니다.
참소리축음기, 에디슨과학박물관은 설립자 손성목관장이 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축음기(콜롬비아 G241호)가 인연이 되었고, 14살이 된 소년은 삼촌으로부터 선물 받은 고장난 축음기와 밤새 씨름하며 완벽하게 고친 후, 그 오래된 축음기에서 들려주는 신비로운 음악은 소년의 마음을 빼앗고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발명은 1%의 영감과 99% 노력의 산물’이라는 에디슨의 명언 속에 담긴 사상과 생활태도를 흠모하며 자란 청년 손성목은 에디슨의 발명품과 유품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조우한, 에디슨은 이후 손성목관장에게는 운명적으로 다가섰고, 서로 비슷한 처지의 성장기를 거치고, 타고난 집념과 꺾이지 않는 의지는 두 사람을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유산을 남긴 발명왕과 전 세계의 축음기 및 에디슨발명품의 1/3 이상을 소장한 수집광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는 50여 년간 축음기가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을 마다하지 않고 수집에 열정을 쏟았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가면서도 물려받은 재산과 건축업으로 번 모든 돈을 에디슨의 유물을 모으기 위해 모두 써버렸다. 그가 수집한 축음기와 발명품들은 오늘의 참소리축음기, 에디슨박물관은 손성목 관장의 피와 땀이 어린 노력과 고난의 역사 속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설립자인 손성목관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참소리에 이끌려 에디슨을 알게 되었고 그의 성실한 외길 인생에,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에디슨이 발명할 것이 너무 많아 300년을 살고 싶다고 했듯이, 나 역시 수집할 것이 아직도 많고, 참소리박물관을 명실상부한 세계제일의 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500년을 더 살고 싶다. 이제 나는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에디슨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활동했지만, 그의 발명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 바로 참소리박물관이다. 따라서 이제 세계인들은 에디슨을 만나러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 강릉의 참소리박물관으로 와야 한다고...’
손성목 관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남은 인생을 어린이 박물관 및 생활용품 박물관과 영화박물관을 추가로 설립하여 명실상부한 종합박물관 타운을 건설하는데 오늘도 헌신의 노력을 바치고 있다. 한사람의 꿈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없을 만큼 그의 꿈은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다. 문화유산편지 가족분들께서도 강릉에 가시거든 꼭 한번 방문하시기를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