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진흥문화재연구원장 김호상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20 | 731655

황태자들이 심은 두 그루의 구상나무
 | 문화유산편지
แก้ไขล่าสุด : 2016/12/22

สถานที่ท่องเที่ยว : South Korea
 | จำนวนผู้ชม : 19081
https://blog.lookandwalk.com/th/blog/kjlove1966/4842/trackback

사진) 경주부 동헌 앞의 두 그루 구상나무(2014. 3)

설명) 이 곳은 조선시대 경주부 동헌이 있었던 곳이며, 현재 동헌은 없어지고 동헌의 살림집인 내아 건물만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질곡의 사연 때문일까, 무성해야 할 두 그루의 고목은 가지가 잘려나가 조금은 휑하다.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앞에는 두 그루의 구상나무가 오랜 역사를 안고 서 있다. 그 중 사진의 왼쪽 나무는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왕세자가 국왕이 되기 전 경주방문을 기념한 식수이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왕세자는 신혼여행 차 일본에 들렀다가 조선의 경주에 많은 고분이 있고, 고분에서 금관이 출토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부인 루이즈와 동생 내외를 데리고 경주를 방문하게 된다.


그는 고고학을 전공한 학자로 세기적 발굴인 이 고분 발굴에 참여하고 싶어, 부산항 부두에 내려 곧장 경주로 왔다. 경주에 도착한 그는 석굴암과 불국사를 둘러보고 경주 최부자 집에서 한국식 만찬을 접하며 다음날 서봉총 발굴을 기대한다.


서봉총의 발굴은 당시 경주분관 박물관장인 모르가가 이 무명의 고분을 발굴키로 결정하고 그와 절친하던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교섭하여 파격적으로 총독의 기밀비 3천원을 얻어 고이즈미 아오키씨를 책임자로 하여 1926년 9월 중순경에 발굴을 시작하였다.


다음날 왕세자는 발굴책임자인 고이즈미와 함께 유물층까지 도달해 있는 고분발굴조사에 참여를 하게 되고, 이때 일본인 발굴자들이 왕세자에 대한 예우와 이벤트성으로 금관을 노출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고분의 이름이 ‘서봉총’이라고 불리워 지게된다. ‘서봉총’이라는 것은 스웨덴을 한자로 ‘서전국’이라 표현함으로 첫 자인 ‘서(瑞)’자와 금관에 부착된 장식이 봉황의 모습을 닮았으므로 ‘봉(鳳)’자를 따서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이때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경주분관 박물관을 둘러보고 기념식수를 하게 된다.


이 보다 조금 앞서 비슷한 시기에 심어진 오른쪽 한 그루의 나무는 일본의 황족인 다카마쓰 노미야가 1926년 9월 21일 즈음에 식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다카마쓰 노미야가 원성왕릉(괘릉)을 답사하며 찍은 사진 좌우에 각각 ‘大正十五年九月二十一日(1926.9.21)’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는 대정천황(大正天皇)의 4남 중 3남으로 1905년에 태어났으며, 당시 제국주의 관례에 따라 첫째 아들 소화천황(昭和天皇) 외에는 모두가 군인이 되어야 했기에 그는 해군이 되었다. 따라서 1926년 경주방문은 해군의 훈련과 동시에 황족외교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26년 10월 10일 스웨덴의 왕세자 구스타프 6세의 기념식수에 약간 앞서 다카마쓰노미야가 조선총독인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부부 및 몇몇 관료와 함께 경주분관박물관을 방문하였을 때 심은 나무가 사진의 오른쪽 나무이다.


올해 봄부터 2016년 연말까지 국립현충원에 식재된 가이즈카 향나무 등 일본 수종의 나무들을 제거한다. 그 이유는 국가적 기념시설에는 해당 국가를 상징하는 조경수를 식재해 국가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적 종합정비계획의 수립 및 시행에 관한 지침’에도 사적 정비시 외래 수종은 가급적 제거하고 전통 수종으로 정비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작전을 하듯이 일본 수종의 나무라 하여 모두 제거한다는 것에는 좀 더 깊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세계역사상 이웃나라 사이에 전쟁과 평화를 번갈아 반복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듯이 우리도 그러한 역사를 겪었으며, 이러한 역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양국이 가지는 정서와 역사적 환경에서는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이 많다. 요즈음 한일 관계가 매우 민감한 상황이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와 영토문제 등은 오랜 기간 양국의 갈등으로 진행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서로 협력자가 되지 않으면 양국 모두 국제사회에서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는 위기의식도 가져야 한다. 나무에도 역사적 가치와 시대적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경주문화원에 심어진 구상나무를 보면서 외교적 마찰 때마다 가지가 잘려나가고 벌목의 위험과 모진 풍상을 겪으며 자라온 저 나무를 이제는 보호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먼 훗날 저 나무는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변신 할 것이며, 일본 천왕도 이 나무를 보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할 지도 모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두 그루 앞에 있는 산수유가 곧 꽃망울을 터뜨리려하고 있다.



원문 링크 http://www.kimhosang.com/html/sub2-2.html?page=4&a...


다카마쓰, 노미야, 서봉총, 김호상, 문화유산, 신라, 경주, 조선, 경주부, 경주문화원, 구상나무, 구스타프, 고이즈미, 아오키
ความคิดเห็นหนึ่งบรรทัด(0) 
PDF
บุ๊คมาร์ค
อีเมล์
0bytes / 200bytes
ดูรายชื่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