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불국사에서 필자와 부시대통령(2005. 11.17)
설명) 부산 APEC 개최 기간 중 한미정성회담이 경주에서 열렸고, 이후 양국정상 내외분들이 불국사를 관람하였다. 정상회담 후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는데, 주 내용은 양국 간 동맹과 협력, 그리고 6자 회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 양국 정상간 선언문에는 북한 인권 문제가 처음으로 공식 포함되었다. 북한 인권문제는 2005년 6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거론된 바 있으나 합의문에는 빠졌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대통령에게 ‘북한을 만나는 것은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며 회담 자체만을 위해 무리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표현을 하였다.
안종덕(安鍾悳, 1841~1907)은 조선말의 대표적인 문신 가운데 한 명으로, 그는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으로 있을 때 고종 임금에게 왕이 행하여야 할 행동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제왕들의 근면은 어진 사람을 구하는데 힘쓰는 것이며, 인재가 얻어진 다음에는 책임과 권한을 모두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나랏일이란, 하루에도 만 가지로 제기되는데 인재를 얻어 적중한 벼슬에 임명해 놓으면 신하 스스로가 아래에서 수고하므로 임금은 위에서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모든 일을 다 맡아본다는 것은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나서는 것을 말합니다.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나서는 것이 근면 한 듯 하지만 신하가 게을러지고 일이 그르쳐집니다. 임금의 근면과 아랫사람의 근면은 마찬가지나 그 결과는 상반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시황(秦始皇)이 직접 제의서를 떠서 받고 수(隋)나라 문제(文帝)가 직접 호위 군사들에게 밥을 먹인 것으로 말하면 해당관청에서 할 일이었지 제왕이 수고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폐하(陛下)는 보위에 오른 이후 놀며 편안하게 즐긴 적이 없고 음악과 여색을 즐긴 적도 없으며 날 밝기 전에 옷을 입고 정사를 보러 나가고 날이 저물어서야 밥을 들면서 날마다 바쁘게 지냈으니 참으로 천하에 의로운 임금이십니다. 하지만 걱정이 지나쳐서 하찮은 일들까지 살피셨고 근심이 깊어서 남을 업신여겨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셨습니다. 하찮은 일들까지 보살폈기 때문에 큰 원칙이 혹 허술해졌고 남을 업신여겨 독판을 해쳤기 때문에 참소가 쉽게 들어왔습니다. 큰 원칙이 허술해 지니 소인(小人)들이 폐하를 기만하게 되었고 참소(讒訴, 거짓으로 비방하는 일)가 들어오니 높은 관리가 자주 교체되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자질구레한 일에 까지 나선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석공이나 목공의 권한까지 쥐고 나면 아래서는 밭 갈고 길쌈하는 노비의 직분까지 잃게 되기 때문에 일을 주관해야 할 모든 신하들이 형세가 막히게 되어 일손을 잡지 못하여 인사 문제를 맡은 관리들이 지시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또 법을 맡은 관리들도 지시만을 받게 되니 임금의 팔다리 노릇을 해야 할 관리들이 어찌 게을러지지 않으며 만사가 어찌 게을러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것을 놓고 감히 폐하께서는 근면의 도리를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 경덕왕이 충담스님에게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안민가(安民歌)로 답하였는데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하면 나라가 태평할 것입니다.’라는 충언을 하였듯이 고대사회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들이 지켜야할 역할과 본분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근일 매스컴과 신문지상에 정제되지 않은 설익은 발표들이 거침없이 솟아져 사회적 불신과 불란을 더욱 키우는 모습들을 보면서 충담스님께서 지적하신 ‘맡은 바의 역할론’과 안종덕 선비의 ‘지도자 근면론’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더 새겨 보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