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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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문화재연구원장 김호상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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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과 추사김정희가 답사한 무장사지
 | 문화유산편지
最終更新日 : 2016/12/02

旅行地域 : South Korea
 | 閲覧数 : 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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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무장사지 삼층석탑 전경 / 가을날에 답사하기 좋은곳입니다.


경주는 신라문화의 중심지로 어디를 가나 찬란한 유적들이 즐비하게 놓여있고, 오랜기간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담고 다녀간 곳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러 곳은 그 모습을 감춘채 지나온 역사를 안고 깊은 산속 억새 바람에 가리워져있다. 이러한 유적지 중의 한 곳이 무장사지(鍪藏寺址)이다.


일연스님은 이곳을 “그윽한 골짜기가 산을 깎아선 듯하며 장소가 침침하고 깊숙하여 주위가 절로 적적하니 이야말로 마음을 휴식하고 도를 즐길 수 있는 신령스러운 장소다”라 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절은 신라 원성왕의 아버지가 그의 숙부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절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찰의 이름을 무장사라고 한 것은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병기와 투구[鍪]를 이 골짜기 안에 감추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병기가 필요없는 평화스러운 시대를 열겠다는 문무왕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곳이다.

현재 무장사터에는 아미타불조성 사적비와 삼층석탑 그리고 폐사지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초석 10여 개와 흩어진 기와편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미타불조성 사적비는 신라 소성왕의 왕비인 계화황후가 왕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을 조성할 때 그 내력을 적어 세운 것으로, 현장에는 귀부와 이수가 남아 있다.


비는 언제 파괴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깨어진 비편을 1760년 홍양호가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암곡촌에서 발견하였다가 다시 그 소재를 잃은 것을 1817년 추사 김정희가 경주일대를 뒤져 다시 찾았다. 이때의 탁본이 청나라 사람 유승간이 편찬한『해동금석원』부록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비신은 현재 경복궁 근정전회랑에 보관되어 있고 무장사터에는 이 비편의 내용을 근거로 비가 복원되어져있다.

귀부는 발이 도식화되어있고, 귀갑중앙에 장방형의 높다란 비좌(碑座)를 설정하고 비좌의 네면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이처럼 귀부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것은 특이한 예에 속한다.

이수에는 아미타불이라는 여섯 글자를 이행으로 새겨져있고, 이수 왼쪽 면에는 김정희의 조사기가 별도로 기록되어있다. 이수는 구름 위에서 앞발에 여의주를 잡고 있어서 통일신라 초기에 조성된 신라 태종무열왕릉비 이후의 이수로는 그 남아있는 예가 드물어 통일신라기 이수의 변천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삼층석탑은 본래 도괴되어 탑재일부를 상실하였으나, 1962년 탑재를 보충하여 복원하였다. 석탑은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건립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석탑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상대 기단부의 가운데 면석인 중석에 안상(眼象)을 조각한 점 등으로 보아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무장사라는 절 이름에 얽힌 뜻을 생각해 보면 삼국간의 치열했던 전쟁으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평화의 시대를 염원하였던 선조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원문 링크 http://www.kimhosang.com/html/sub2-2.html?page=11&...


김호상, 문화유산, 신라, 경주, 무장사지, 일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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