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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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문화재연구원장 김호상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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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천왕과 안류와 을파소
 | 문화유산편지
Last Modified :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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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주 보문리절터 당간지주(보물 123호)

설명) 사찰에 큰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내걸거나,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는데 쓰이던 기둥이 ‘당간’이다. 당간은 원통형의 나무나 금속 통을 겹쳐 올려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이 기둥을 세우기 위해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 대개 시간이 지나면서 유동적인 당간은 사라지고 땅에 박혀 고정되어 있는 당간지주만 남는다. 이러한 당간지주는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많이 전해져오고 있다. 천년의 풍파를 겪고 부러지면서도 처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수많은 유물 중 내게 늘 감동을 주는 주제유물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 국천왕(國川王, 故國川王)때 ‘왕후의 외척 어비류와 좌가려 등이 권세를 휘둘러 옳지 못한 짓을 많이 하자, 나라 사람들이 이를 원망하고 왕 또한 분노하여 그들의 목을 베거나 귀양을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국천왕은 다음과 같은 영을 내렸다. ‘요즈음 벼슬이 총애로서 주어지고 직위에 덕이 없는 사람이 진출하여 그 해독이 백성에게 퍼짐은 물론 왕실까지 동요 되는구나. 이것은 과인이 밝지 못한 탓이다. 4부(四部, 고구려의 행정부)는 각기 아래에 있는 어질고 착한 사람을 천거하라.’고 하자, 4부에서는 동부(東部)의 어질고 현명한 사람인 안류(晏留)를 공동으로 천거하였다.

왕은 그를 불러 국가의 정책을 맡기려 하였더니 안류가 왕에게 아뢰기를 ‘미천한 저는 용렬하고 어리석어 본래 큰 정치에 참여할 수 없으니 을파소(乙巴素)를 추천하겠습니다. 을파소는 성질이 강직하고 지혜와 생각이 깊은데도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이 사람이 맞는듯합니다.’하며 을파소를 추천하였다.

왕은 을파소에게 사람을 보내 겸손한 말과 정중한 예로 초빙하여 국상(國相)에 제수하여 나라의 정치를 맡게 하였다. 이 당시, 을파소는 귀족들의 권익을 축소하고 국가의 재정을 확충하는데 힘쓰는 진대법(賑貸法)을 시행하였다. 이 제도는 흉년과 춘궁기에 국가가 농민들에게 양곡을 대여해주고 수확기에 갚게 하는 제도로, 이로 인하여 기존의 기득권 대신들은 고리대금으로 부당이익을 축적할 수 없어 불만을 표출하며 을파소를 미워하였다.

이에 왕이 하교하되 ‘귀천을 막론하고 국상에게 복종치 않는 자가 있으면 족(族, 한집안의 계통)을 멸하리라.’고 하였다. 을파소가 왕의 명령을 듣고 물러나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어서 살고, 때를 만나면 나아가 벼슬하는 것은 선비의 당연한 일이다. 지금 임금께서 두터운 의리로 나를 대우하니, 어찌 예전에 숨어살던 것을 다시 생각하랴?’ 이에 지극정성으로 나라에 봉사하여 정치와 교화를 밝히고 상벌을 신중하게 하니, 백성들이 편안하고 중앙과 지방에 불란(不亂)이 없었다.

국천왕이 안류에게 ‘만일 그대의 추천이 없었다면, 내가 능히 을파소를 얻어서 국가정책을 함께 다스릴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모든 치적이 이루어 진 것은 그대의 공이다.’ 라고 말하며 안류를 대사자(大使者, 고위관직)로 삼았다. 모두로부터 어질고 현명한 사람으로 천거 받은 안류가 권력에 욕심을 내지 않고 국가를 위해 정책을 잘 펼칠 수 있는 을파소를 다시 왕에게 천거하였고, 왕은 을파소를 중책에 맡겨서 그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을 보면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달과 영리를 위하여 정치를 하는 것 같다. 또한 근현대 한국의 대통령들을 보면 국민이 원하는 관료가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법을 어긴 추한 모습을 갖고 있더라도 자신을 추종하거나 자신의 뜻을 대내외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진 사람을 핵심요직에 앉히는 모습을 흔히 본다.

분명히 폐족임에도 불구하고 집권자가 불러만 준다면 달려가서 충성하는 그러한 천거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 중에서 선별된 우수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흠 없이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듯하다. 배고픔 속에서도 올 곧게 백성들을 위해 의리와 신념을 지키고, 도끼를 들고 성문 앞에 엎드려 민심을 전달하던 그런 목민관(牧民官)이 그립다.



원문 링크 http://www.kimhosang.com/html/sub2-2.html?page=8&a...


김호상, 문화유산, 신라, 경주, 고국천왕, 안류, 을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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