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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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문화재연구원장 김호상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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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와 천문을 관측하는 마음
 | 문화유산편지
Last Modified : 20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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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첨성대(경주시 인왕동 839-1. 국보 제31호)

감상) 첨성대 하면 나는 고인이 된 두 거인이 생각난다. 첨성대의 이설을 제기하고 고군분투했던 이용범 교수님. 선생의 동양사강좌를 앞자리에 앉아 듣는 날에는 어김없는 열강으로 난 늘 침 세례를 받고는 하였다. 한국을 사랑한 대지(大地)의 작가 펄벅. 1960년 늦가을 감나무의 까치밥과 첨성대를 둘러보면서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오늘은 날씨가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새싹이 난다고 하는 우수(雨水)입니다. 거기에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해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比目)처럼 사랑하며 살아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이런 날은 낮술한잔 하고 싶기도 하고, 집사람이 좋아하는 수제비도 배달시켜 주고 싶다.


고대의 천문관측은 크게 두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역법(曆法, calendar)을 만들기 위한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의 운행을 관측하는 것이고, 다른 한 분야는 행성의 배치로 정해진 별자리를 관찰하여 국가나 지방의 길흉을 점치는 것이었다.


첨성대(瞻星臺)는 신라시대 천문을 관측하던 석조건축물이며 높이는 9.108m이다. 구조를 살펴보면 기단부 아래의 땅속에는 잡석과 받침돌을 채워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물병모양의 몸통부인 원통부(圓筒部)에는 한 변의 길이가 약 95cm인 정방형 사다리 출입구가 있다. 물병모양의 몸통의 정상부에는 정(井)모양의 길다란 돌이 2단으로 걸쳐져있고 내부에는 반원형의 편평한 돌로 마무리되어 있다.


한편,1970년대부터는 첨성대가 천문관측에 사용되었던 건축물이 아니라는 견해가 제기되면서 첨성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첨성대가 천문관측시설이 아닌 불교제단, 기념물, 불교관계 건축물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설과 이견(異見)이 속출되었다. 이러한 설들의 근거로는 현존하는 첨성대가 지형이 높은 곳에 위치하지 않고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과 첨성대의 자체구조상 그 위로 오르내리는 통로가 매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정상부의 장소가 협소하며, 전체적인 외형이 불교의 수미산과 유사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설에도 불구하고 학계는 종전의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첨성대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천문관측대로 믿어지고 있다.

그것은 첨성대의 이설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였던 동국대학의 이용범교수가 80년대 말에 타계하는 관계로 국제적으로 치열하던 첨성대의 기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선덕여왕대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기록과 이후의 기록인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등에서 한결같이 [삼국유사]의 기록과 년대의 착오는 있지만 기능과 내용에 별다른 차이점이 없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대사회에서의 천문학과 역사학은 절대군주의 전유물이었다. 그것은 신비롭과 공포스러운 자연의 현상에 대한 이해와 예상을 통해서 국민들의 동요를 군주의 위엄으로 차단할 수 있었고, 지나온 역사를 통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천문관측은 고대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만큼의 세밀한 자연현상까지 관찰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수퍼컴퓨터와 첨단의 천체관측장비가 아무리 천문을 잘 관측하고 천문학의 발달이 눈부시다고는 하나 우리의 자연현상에 대한 예상이 항상 적중할 수는 없다. 이에 반하여 고대의 통치자들은 불완전하고 초보적인 천문학에 의지하면서도 애민(愛民)하는 마음을 통해 극복해갔으며 또 마음만은 부족함이 없었다. 어쩌면 그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의 발달로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빈자리를 애민하는 마음으로 채워갔던 것이다.


며칠전 러시아 첼랴빈스크주(州)를 비롯한 우랄산맥주변지역에는 지름 17m 크기의 커다란 운석이 대기권과 충돌해 터지면서 운석파편으로 인하여 1000명 넘게 다쳤다. 그것도 천둥과 벼락이 내리치는 하늘이 아니라 푸르디푸른 하늘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는 현대의 뛰어난 천문학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진정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 그러한 마음으로 천재지변을 극복하고자하는 의지야 말로 인재(人災)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고 첨단과학으로도 막아내지 못하는 천재지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원문 링크 http://www.kimhosang.com/html/sub2-2.html?page=10&...


김호상, 문화유산, 신라, 경주,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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