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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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문화재연구원장 김호상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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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소를 통해본 권력견제기관의 초발심
 | 문화유산편지
Last Modified :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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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주 사마소(경주시 교동, 문화재자료)

설명) 경주 사마소는 현재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300m 거리에 있는 월정교의 북쪽 교대 위에 있었으나 1984년 경주월성 사적지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이 건물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영조 17년(1741)에 다시 세워 ‘풍영정’ 이라 부르고 있다. 건물 측면의 사마소 현판은 당시의 부윤(府尹) 홍양한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소(司馬所)는 16세기 초 고을 수령의 자문기관이었던 유향소(留鄕所)에 대항하여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인 사마시(司馬試) 출신의 젊은 유림(儒林)들이 향촌(鄕村)사회의 권력을 주도하기 위해 만든 자체협의기구, 즉 당시의 지방자치기관이었다.

사마소가 처음 세워진 당시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수양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또한 권력을 장악한 이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맡은 중대한 임무를 자각하고 선정을 다짐하기도 하였으며, 생원진사들의 친목과 정치토론 및 교육활동을 펼침으로써 각 고을의 교화와 지방행정에 기여하였다.


사마소는 시간이 흐르면서 각 고을의 관청 근처에 자리 잡고 하나의 특수기관처럼 행세하면서, 점차 노골적인 압력단체로 변질되어 유향소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수령의 지방통치까지 간섭하였다. 또 노비와 토지를 확보하여 재산을 늘리고, 향리와 백성을 함부로 잡아다 형벌을 주는 등의 폐단을 가져왔는데 이런 폐단은 특히 호남과 영남지방에서 심하였다. 이러한 폐단과 유향소와의 끊임없는 마찰로 인해, 선조 36년(1603) 유성룡의 건의로 폐지되었으나 지방에 따라서는 그 악습이 계속 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각각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하여 3권이 분리되어 있고, 지방자체단장의 독단을 견제하기위해 지방의회가 설립되어 있다. 이외에도 시민단체와 언론단체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견제기관들 역시, 설립 당시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설립의 목적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부분이 많아지고 있다. 의회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역할, 시민단체들의 순수성, 언론기관의 윤리강령 등의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기득권과 집단의 영향력 확대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아쉽다.


요즈음 접하는 기업들의 탐욕과 법조계의 비리, 정당들의 정책 등을 보고 있노라면 집단의 소유욕과 권력욕이 넘쳐나는 것 같아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돌이켜보며 사마소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초발심을 지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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