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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임한리 #4 - 개량한옥을 구경할 수 있는, '선병국가옥' (1) - (한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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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 2017/03/02

Travel regions :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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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병국가옥


선병국 가옥은 1919년에서 1921년 사이에 보은 선씨 선정훈이 당대의 제일 가는 대목들을 불러 후하게 대접하며 마음껏 지은 집이다. 이 일대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던 그는 인근의 영재들을 뽑아 사재로 교육시키기도 했고 오가는 길손을 받아들여 먹이고 재운 후 노자까지 들려 보내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이 연화부수형의 명당이기 때문에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민가는 규모와 배치에서 규제를 받았다. 세종 13년(1431) 처음 발표된 가사규제는 서민 10칸에서부터 대군 60칸까지 신분에 따라 집의 규모를 정하고 있다. 조선 말이 되면 이러한 주택규제는 무너지고 개화바람이 들면서 집 주인의 재력과 안목에 따라 다양한 개량 집짓기가 시도된다. 선병국 가옥은 그런 시대에 이 지역의 대지주였던 선씨가 변화된 시대와 주거관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덩실하게 지은 부잣집이다. 따라서 전통주택에서와 같은 유현(幽玄)함은 없으나 합리성과 활달함, 위세로 느껴질 만한 자신감을 내보인다. 지금은 건축주의 두 손자인 선민혁·선사혁 씨가 살고 있다. 선병국 가옥은 중요민속자료 제134호이다.




이 집은 크게 사랑채와 안채, 사당의 세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각 공간은 하나하나 안담으로 둘렸고 그 전체가 바깥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남쪽을 향해 길게 뻗은 바깥담 가운데에 솟을대문이 있고 그 문으로 들어서면 널찍한 바깥마당 건너로 곧장 사랑채를 싼 담과 중문이 보입니다.



요즘 이 집 사랑채는 전통찻집이 되어 구경꾼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바람이 솰솰 부는 대청에서 이리저리 돌아앉으며 화단이나 담장, 담 너머 숲과 담 앞의 감나무·소나무, 장독, 처마 따위를 바라보노라면 이런 집에 살던 사람들의 정서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 집은 전통가옥이라고는 하지만 조선시대 양반·사대부 집과는 다른 점이 많다. 커다랗게 다듬은 화강석 기단이나 둥근 기둥을 받친 팔각 주춧돌 등은 예전의 보통 살림집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널찍한 공간, 반듯하고 견고하게 다듬어진 목재들과 멋부린 문살 등은 기름이 지르르 도는 느낌마저 준다. 옛날 집이라면 흔히 연상되는 은근하고 조붓한 맛, 모퉁이를 돌면 글 읽는 소리나 아낙들의 고물고물한 살림 얘기가 들려올 듯한 분위기와는 퍽 다르다.







효열문입니다.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머리를 숙이고 지나가도록 상단의 높이가 낮게 지어져 있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뻣뻣하게 허리를 세우고 들어가다가 머리를 부딛혔습니다.



가난한 소작농을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덕행을 일삼은 선씨 가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소작농들이 정성을 모아 만들어 주었다는 철로 된 감사비입니다.





풍수지리학 적으로 보아도 이곳은 명당이라고 합니다. 본채 건물이 뒤에 보이는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남향입니다.



아래 보이는 안채 건물도 산을 뒤에 끼고 있는 남동향 건물입니다.




안채규모나 모양이 사랑채와 동일하지만 석축기단을 2단으로 쌓아 사랑채보다 격을 낮췄다. 사진은 뒤에서 본 안채의 모습이다.





조선시대에는 둥근 기둥은 궁궐에만 허용되었고 민가들은 사각형의 기둥만이 가능했었다고 합니다. 1920년 경에 이 건물을 지을 때는 이러한 규제가 허물어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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